
만약에 당신이 누군가와 싸우게 된다면 이기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상대의 수를 읽어내는 것일 것이다. 야구도 마찬가지이다. 투수와 타자는 일종의 둘만의 싸움을 하게 되고 만에 하나 어느 쪽이라도 상대가 노리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면 한쪽이 절대적 우위에 설 수 있다. 그리고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야구계에서는 사인 훔치기가 종종 있는 일이다. 2루에 나간 주자가 사인을 읽어 타석에 있는 타자에게 전달하는 등 여러 방법을 통해 사인을 훔치려고 하고 이러한 행위는 어느 정도 용인이 된다. 이기고자 하는 욕구로 인해 그러한 행위를 할 수도 있는 것이고 이는 충분히 예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자기기가 반입되는 순간, 이는 규칙에 반하는 행위이다. 전자기기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많은 정보를 훔치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는 스포츠에 기계의 반입은 도에 어긋난 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다.
지난 2019년 11월 경, 전 휴스턴 애스트로스 소속이었던 투수 마이크 파이어스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2017시즌에 휴스턴 타자들이 전자 기기와 비디오카메라를 사용해 상대의 사인을 훔치고 그것을 이용해 타격을 했다고 폭로했다. 마이크 파이어스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2015, 2016, 2017, 세 시즌 동안 함께 했었고, 휴스턴은 2017년 월드시리즈에서 LA 다저스를 꺾으며 챔피언 자리에 올랐었다. 실제로 파이어스의 진술은 신빙성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휴스턴의 갑작스러운 삼진율의 변동이었다.
휴스턴 경기당 삼진 (타자)
2015: 8.68 (리그 전체 29위)
2016: 8.96 (리그 전체 27위)
2017: 6.76 (리그 전체 1위) (월드 시리즈 우승)
2018: 7.44 (리그 전체 2위)
2019: 7.33 (리그 전체 1위)
2016년까지만 하더라도 하위권에 맴돌던 팀 경기당 삼진률이 2017시즌이 되자 갑작스럽게 리그 전체 1위에 오를 정도로 줄어들었다. 특히 타격 코치가 딱히 교체되지도 않았었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는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기록은 파이어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고 결국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는 휴스턴 애스트로스 수뇌부를 조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휴스턴 타자들이 전자기기를 사용해 사인을 훔친 후, 쓰레기통을 두들겨 다른 타자들에게 전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휴스턴의 단장과 감독인 제프 르나우와 A.J 힌치는 해고되었다. 그들은 추가로 1년 동안의 자격 정지라는 처벌을 받았다. 조용히 물러나도 부족할 망정, 제프 르나우 단장은 경질되기까지의 과정이 정말 추했는데, 그는 해고 통보 이후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사인 훔치기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으며, 만약 알았으면 말렸을 것이라는 결백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그에 대한 여론은 바뀌지 않았다.
휴스턴의 사인 스틸링 스캔들은 내부 인사 해고에서 그치지 않았고 다른 곳으로까지 불똥을 튀겼다. 2017년 당시 휴스턴 소속이었던 알렉스 코라, 보스턴 레드삭스의 감독과 카를로스 벨트란, 뉴욕 메츠의 신임 감독이 당시 사인 훔치기의 주범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 둘 또한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특히 벨트란의 경우, 그는 취임 후 한 경기도 치르지 못하고 사임한 메이저리그 역대 두 번째 감독이라는 불명예 기록의 주인공이 되었다. (보스턴 레드삭스 또한 월드 시리즈 우승을 일구어 냈던 2018시즌에 사인을 훔쳐 우승을 했다는 폭로가 나왔는데, 그들은 휴스턴과 달리 포스트 시즌에는 훔칠 수 없었다는 사실이 나와 휴스턴의 케이스보다는 상대적으로 파급력이 낮았다.)
이러한 나비 효과도 있었던 반면, 휴스턴의 치팅 사실로 인해 더욱 많은 각광을 받게 된 경우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2019시즌 월드시리즈 챔피언 워싱턴 내셔널스인데, 그 이유는 그들이 월드시리즈에서 휴스턴과 맞붙었을 때 거둔 4승 모두 휴스턴의 홈구장에서 거둔 승리였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치팅이 더욱 활성화되는 홈구장에서 거둔 4승은 매우 대단해 보이는 기록이었다. 이러한 사실 이후 여론의 관심을 받은 워싱턴 측에서는 실제로 이상한 낌새를 포착해 사인을 바꾸었다고 밝혔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는 휴스턴의 사인 스틸링 사실이 공공연해지자, 그들의 2020, 2021년 1~2라운드 신인 지명권을 박탈했고 벌금 500만 달러 (한화 58억)를 부과했다. 많은 메이저리그 팬들은 휴스턴의 우승 박탈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팀의 우승 박탈은 전례 없는 일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휴스턴의 선수들 또한 직접 관여 여부를 밝혀낼 수 없기 때문에 처벌을 할 수 없었다.

휴스턴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몇몇 휴스턴 선수들의 인터뷰가 공개되기도 했는데, 휴스턴의 주전 유격수, 카를로스 코레아의 인터뷰 내용도 포함이 되어있었다. 인터뷰에서 그는 파이어스의 폭로에 대해 함께 뛰었던 동료였기 때문에 그의 이러한 발언은 놀라울 따름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전했고 이러한 뻔뻔함은 많은 팬들의 질타를 받았다. 코레아 또한 올 시즌,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결장하기는 했으나, 전자기기를 통해 많은 이익을 취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극명한 홈과 원정 성적의 차이였다.
카를로스 코레아 2019시즌 홈/원정 스플릿
홈 (Home): 36경기 출장, 127타수 41안타 타율 0.323 11홈런 31타점 OPS 1.030
원정 (Away): 39경기 출장, 153타수 37안타 타율 0.242 10 0.242 10홈런 28타점 OPS 0.836
부상 결장으로 인해 표본이 적기는 하나, 홈과 원정 성적은 명백히 차이를 보인다.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홈구장은 콜로라도의 홈구장, 쿠어스 필드처럼 타자들의 공격력을 극대화시켜주는 구장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수치이다. 또한 휴스턴의 또 다른 주축인 알투베 또한 홈과 원정 성적에서 적지 않은 차이를 보였다. (홈: 18홈런 37타점 OPS 0.979 / 원정: 13홈런 37타점 OPS 0.836)
휴스턴의 사인 훔치기는 2017시즌 MVP를 수상했던 알투베와 2위로 아깝게 신인왕-MVP 동시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놓친 애런 저지의 기록을 다시 한번 비교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알투베가 MVP를 수상했던 2017년이 휴스턴이 사인 훔치기를 실행했다던 해이기 때문에 스포트 라이트 아래에 놓이는 건 당연했다. 또한 저지는 알투베가 상을 탔던 2017년, 본인의 SNS를 이용해 알투베의 수상 사실을 축하하는 글을 올렸었는데, 사인 훔치기 스캔들 이후 그는 그 글을 삭제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 부분이지만, 비열한 방법을 남용해 우승을 차지했을지도 모른 사람을 위한 축하 글을 삭제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지이자 합리적인 결론이다.

2017시즌 알투베/저지 성적 비교
호세 알투베 (2017 MVP):
153경기 출장, 590타수 204안타 타율 0.346 24홈런 81타점 112득점 32도루 58볼넷 OPS 0.957 bwar 8.1 fwar 7.6
애런 저지 (2017 MVP 투표 2위):
155경기 출장, 542타수 154안타 타율 0.284 52홈런 114타점 128득점 9도루 127볼넷 OPS 1.049 bwar 8.1 fwar 8.3
알투베의 20-20 클럽 달성을 고려하더라도 저지의 성적이 한 수 위로 보이는 듯한 기록이다. 결국 팬들은 알투베가 2017년 당시 우승 프리미엄과 그의 자신의 불리한 신체 조건을 이겨낸 인간 승리 스토리 덕분에 MVP를 수상할 수 있었다며 그의 수상을 폄하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알투베에 대한 연민이 피어오르려 하는 것도 잠시, 이는 그만큼 많은 팬들이 휴스턴의 만행에 분노했다는 반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30개의 팀이 싸워 오직 한 팀만이 왕좌에 오르는 이런 삭막한 레이스에서 치팅은 인간이 가장 추해질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휴스턴의 사인 훔치기에 대한 의혹은 아직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 이유는 선수들이 사인 훔치기에 직접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아직까지 존재하기 때문이고, 알투베의 2019 ALCS 6차전 끝내기 홈런 이후의 세리머니는 이를 증폭시켰다. 알투베는 ALCS 6차전에서 양키스의 마무리 아롤디스 채프먼의 바깥쪽 슬라이더를 완벽하게 받아쳐 팀을 월드시리즈에 올려놓는 끝내기 홈런을 쳐냈다.
그 과정에서 이상한 낌새가 보였던 것은 아니지만, 석연치 않았던 점은 알투베가 베이스를 돌고 홈 플레이트로 돌아올 때 발견되었다. 알투베는 그를 맞이하는 동료들을 향해 자신의 셔츠를 찢지 말라고 했는데, 왜 굳이 그랬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셔츠 안에 전자기기를 붙여놨기 때문이 아니냐는 추론을 수면 위로 떠올리게까지 했다. 한 팬은 알투베의 셔츠를 확대하며 전자기기를 붙였다는 증거라 칭하며 SNS에 게시했고 이는 곧 확산되었다. 하지만 그 사진 하나로는 확실히 진상 규명을 할 수가 없었고 선수 또한 부정했기 때문에 확대 사진 하나로는 휴스턴 선수들의 직접적인 개입을 증명하는 증거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갈 곳을 잃은 여론은 이러한 사실을 폭로했던 마이크 파이어스로 눈길을 돌렸다.
진실을 밝히더라도 비난을 받는 경우가 있다. 마이크 파이어스도 그랬다. 휴스턴의 치팅 사실을 폭로한 그의 용기를 격려하는 여론도 있었던 반면 페드로 마르티네즈는 그의 이러한 행위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 이유는 그가 사인 훔치기가 일어나던 그 당시에는 침묵하다가 이제 와서 그 사실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본인도 취할 이득을 다 취한 뒤 폭로했기 때문이다. 페드로 마르티네즈는 그의 폭로의 시기가 적절하지 못한 부분을 꼬집었다. 확실히 파이어스의 폭로는 마냥 칭찬받을 행위는 아니다. 하지만 그의 폭로가 있었기 때문에 휴스턴뿐만 아니라 몰래 해오던 다른 팀들도 전자기기를 사용해 사인을 훔치려는 행위를 자제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파이어스의 폭로는 야구계가 조금 더 깨끗해지는데 기여를 할 것이다.
이래나 저래나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이번 오프 시즌 가장 큰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들의 비열한 행위는 곧 많은 패러디를 양산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들은 곧 시작하는 2020시즌에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많은 팬들이 그들을 경계하며 주의 깊게 지켜볼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성적으로 결백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또한 원정에서 몇 번 들을까 말까 한 야유는 그들에겐 필연적인 요소가 되었다. 과연 휴스턴은 2020시즌에 지난 세 시즌과 다르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성적을 낼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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